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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미약하지만, 끝은 창대 하리라 1. 박사학위에 도전2003년에 연세대학교 정보대학원 박사학위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먼저 아내의 동의가 필요했다. 시작은 하지만, 언제 끝날 것인지 기약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오히려 아내는 박사 아내, 교수 사모가 되는 것이 소원이라는 협박에 가까운 허락이었다. 이제는 회사의 허락이 필요했다. 삼성전자 본사 벤처 사업팀에 있던 상사에게 말씀드렸더니, 잘 알아서 하라고 허락을 해 주셨다. 그리고 연세대 경영대학원 교수 두 분에게 추천서를 받아서 지원을 했고 합격을 하여 공부를 시작하였다. 초기에 시간제 박사과정 학생을 배려해서 일과 이후 수업이 있어서 참여할 수 있었다. 석사과정을 연구실에서 공부해 본 경험도 없고, 회사와 공부를 병행하다 보니 참 힘들었다. 몇 학기를 진행하.. 2025. 2. 28.
부모가 되어보니, 부모님의 맘을 알게 되었다 1. 새로운 도전에 직면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되고 보면, 비용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된다. 미국 피츠버그대학교 국제마케팅과정을 수료하고 나서 국내에 돌아와 가족과 함께 미국 대학교 MBA에 유학 가는 것을 생각한 적이 있었다. 물론, 실행했었으면 지금과 상황이 크게 달라졌겠지만 경제적인 문제가 쉽지가 않았다. 대학원 석사과정에 도전을 결심하고 돌아가신 장인께 계획을 말씀드리니, 입학과 마지막 등록금은 본인이 지원해 줄 터이니 결단해서 실천하라는 격려를 해 주셨다. 박사과정도 입학금은 장인으로서 의미가 크다 하시며 내주셨고 말기 암으로 투병하시면서도 등록금을 현금으로 준비하셔서 전달해 주셨다. 그런데 졸업도 보지 못하시고 하늘나라로 가셨다. 그래서 삼성전자에 근무하면서 주.. 2025. 2. 28.
스페셜리스트! 나는 ICT & AI 분야의 전문가다 1.  삼성전자 입사 처음에 업무를 시작한 곳이 삼성전자 정보통신 부문 국내영업본부 카폰 영업팀이었다. 영업사원, 영업대표로 직장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삼성대졸 신입사원 하계수련대회가 무주구천동 캠프장에서 있었다. 정보통신 부문의 동기대표를 맡아서 그룹 관계사 간 열띤 응원, 체육대회, 종합퍼포먼스 등의 경진대회에서 1등을 수상해서 우승기를 동기생 5천 명 앞에서 휘날렸던 기억도 생생하다. 반면에 신입사원으로 경험해 보지 않은 영업현장에서 제품을 팔아야 한다는 것에 막연한 두려움 또한 있었다. 그러나 잔심부름부터 시작한 일이, 유통대리점 개설도 최단 시간 내에 해내고 장교 출신답게 씩씩하고 빠릿빠릿하게 일 처리를 꽤 잘했던 모양이었다. 영업본부에 영업교육을 전담하는 교육 분야가 새로 생기면서 생명보험사.. 2025. 2. 28.
삼성전자, 글로벌 IT 일류 기업! 중심에 있었다. 1. 대한민국 IT강국을 이끈 삼성전자전자공학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30년 전에 선택한 분야가 대한민국을 IT 강국으로 성장시킬 핵심 엔진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내가 입사할 당시 삼성전자가 지금의 글로벌 IT 1등 회사가 되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국가경제가 꾸준히 성장을 하고 있어서 지금처럼 취업이 바늘구멍으로 비유되고, 청년백수라는 용어는 들어보지도 못했다. 당연히 취업신청서를 2-3개 놓고 비교를 해서 갈 수 있었던 시기였다. 그런데 전자공학과에 3학년부터 변화가 생겼다. 일본에서 반도체를 공부하고 오신 교수님이 새로 부임해 오시면서 국내 대학에서 몇 개 되지 않는 반도체 연구소가 설립되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고 있었는데, 대학 4학년 때 졸업논문과 함께 Z-80 마이크.. 2025.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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