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북극성은 무엇인가?
중학교를 졸업할 시기에 고등학교를 선택해야 할 때가 있었다.
감사하게도 중학교 때 공부를 곧잘 했었다. 그 당시는 공교육이 살아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매 학기 중간고사, 학기말 고사로 지금처럼 학원에 다니지 않아도 열심히 교과서만 예습과 복습을 하더라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그래서 중학교 1학년부터 줄곧 반에서 1, 2, 3등을 할 수 있었다. 의정부지역에서 유일하게 미션스쿨이었던 경민중학교에 다니면서 매주 성경 종교 과목이 있었고, 찬송가와 성경을 배우고 전체 학생들이 예배에 참석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지금의 믿음의 씨앗이 그때 생겨난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중학교와 집이 먼 거리에 있어서 버스통학을 하고 들판을 걸어 다니면서 사철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모내기의 바쁜 농번기부터 황금빛 가을 벼가 익어가는 들판을 혼자 걸으며 많은 생각을 했었다. 일단, 고등학교를 진학하는 것이 큰 고민거리가 되었다. 한수 이북지역을 대표하는 인문계 학교인 의정부고등학교를 가서 대학을 가는 것이 당연했지만, 학비 때문에 집에서 대학 진학 하는 것에 대한 장담을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참 낙담이 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아주 중요한 결심하게 되었다. 일단 집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으로 국내 도망가고 싶었다. 그 당시에는 전국에서 3학년 1학기 성적이 상위 1∼5% 안에 들어야 갈 수 있는 국립고등학교가 있었다. 지금으로 따지면 머리 좋고 공부 잘하는 학생이 가는 민사고, 과학고와 같다고 볼 수 있다. 구미에 금오공고, 부산에 부산기계공고, 서울에 수도공고, 전북에 전북기계공고가 유명했다. 그런데 대학을 가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조국 근대화의 기수라는 명목으로 우수한 학생을 모집하여 기술과 직업교육을 병행해서 산업현장으로 보내는 제도가 있었다. 일단 대학 가는 것은 둘째치고 당장 고등학교를 결정해야 했기에 집에서 가장 먼 곳이 부산이었기 때문에 부산으로 결정을 스스로 하고서 지원서를 냈는데, 같은 중학교에서 함께 지원한 동기생 5명이 시험응시를 해서 모두 합격을 하게 되었다. 늘 5명이 함께 다니면서 일가친척 없는 부산의 바닷바람을 맞으며 아주 외로운 시기를 잘 넘길 수 있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2학년 여름으로 기억된다. 중학교 때 영어 선생님이셨던 학교법인 경민재단의 이사장의 자제이신 홍문종 선생님과 역사과목의 이소영 선생님이 학교커플로 소문이 있었는데, 그 당시 최고급 호텔인 부산의 해운대 조선비치호텔로 신혼여행을 오시면서 제자들이 공부하는 해운대 비치가 바라다 보이는 장산에 위치한 국립부산기계공업고등학교에 위문 방문을 하셨다. 그때 하신 말씀이 "너희는 경민중학교를 대표해서 선발되어 온 만큼,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공부하라"라고 말씀하셨다. 지금은 정치계를 대표하는 중진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계신다. 열심히 공부해서 명문대학에 진학하라는 말씀까지는 아니었어도, 학교는 대학진학공부와는 동떨어진 산업기술을 습득하는 교육이지만, 혼자 독학을 해서라도 다시 서울에 있는 대학교, 육군사관학교를 가겠노라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산업현장으로 취업하려는 동기생들과는 다른 행동을 하게 된다. 추운 겨울에도 새벽에 반딧불이 도서관에서 숱한 날들을 보냈다. 한참 세월이 흘러서 두 아들과 함께 추억이 깃든 도서관을 다시 찾아보기도 했다. 그 당시 친구들이 보기에는 아주 이상한 아이였었던 것이 분명하였다. 대학을 진학할 것이 라면 이렇게 먼 데까지 올 것이 아니라, 인문계고등학교를 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 는 것이었다.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답답하던 시절을 독학으로 대학 학력고사를 치러서 서울에 있는 서울시립대학교 전자공학과에 합격할 수 있었다.
2. 현재를 잘 살아내는 것이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삶의 이정표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게 되는데, 그 시기와 시점은 주관적이어서 꼼꼼하게 생각을 해보아야만 알 수가 있다. 동쪽 하늘의 샛별인 북극성을 보면서 인생의 진로를 고민했었던 그 어린 학생이 어느덧 성장해서 꿈속에서나 생각했던 대한민국 육군의 ROTC 장교, 삼성그룹 비서실, 삼성경제연구소 삼성인력개발원, 글로벌 IT기업 삼성전자 부장, 연세대학교 정보시스템학박사, 한국교통대학교 교수, 최근에는 미래부 창조경제를 견인할 ICT 플랫폼을 만들어내는 민간전문가 기술사업화 CP(Creative Planner)라는 위치에 까지 오게 되었다. 요즘도 동쪽 하늘을 또 보게 되는 이유가 있다. 또 앞으로 살아갈 날들 때문이다. 이정표가 과연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었다. 막연했던 시간 속에서 맘에 새겨져 있는 꿈과 비전인 북극성은 결정적인 순간에서 비난과 조롱에도 흔들림 없이 앞만 바라보고 묵묵히 갈 길을 가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그 북극성의 실체가 궁금해졌다. 과연 무엇일까? 요즈음 깨닫는 것이 생겼다. 믿음이다.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다. 세상이 주는 꿈을 이루며 살았지만, 그것이 종착역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제는 역할이 제법 많이 생겼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 아빠, 남편, 박사, 교수, IT분야의 전문가 역할을 잘 감당해 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현재를 잘 살아내는 것이다. 매 순간 의사결정을 할 때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겸손하게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다. 세상에는 절대적으로 높고 존귀한 사람과 자리는 없다. 누구든지 이유 여하를 불구하고 자리에 올라가면 내려와야 한다. 자리에 있을 때 겸손해야 한다. 교만이 만 가지 악의 근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변함없는 이정표 역할을 하는 북극성을 보면서 새로운 꿈과 비전을 또 생각하게 되었다. 교만하여지지 않도록 겸손하게 현재의 순간에 최선을 다하며 앞만 바라보며 한발 한발 내딛는 것이다. 그러면 또 다른 시간에 가 있게 될 것이고 변하지 않은 북극성은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꿈을 이루며 사는 것은 겸손히 현재의 순간에 최선을 다하며
앞만 바라보며 창조주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가는 것이다.